예약하는 것부터가 이미 반은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예약하는 것부터가 이미 반은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처음 문턱을 넘기가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사실 상담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꽤 오래전이었다. 단순히 기분이 안 좋다는 수준을 넘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숙제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으니까. 주변에서는 그냥 좀 쉬라고, 맛있는 거 먹고 잠을 푹 자라고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겪어본 사람은 알 거다. 검색창에 수원정신건강의학과를 쳐놓고도 몇 번이나 창을 닫았다 열었다 했다. 왠지 내가 가면 안 될 곳을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막상 갔는데 의사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칠지 두렵기도 했다. 뇌파검사비용 같은 건 대략 얼마 정도 드는지, 보험 처리는 어떻게 되는지 하나하나 알아보는 과정 자체가 이미 지치는 일이었다. 결국 동네에서 평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차분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예약금과 첫 대면의 어색함

상담 문의 전화를 했을 때 들었던 가장 첫 번째 감정은 ‘안도’가 아니라 ‘귀찮음’이었다. 이름과 생년월일, 대략적인 방문 이유를 말하는데 내 입으로 내 상태를 정의하는 게 참 힘들더라. 예약 시간은 평일 오후 3시였다. 사실 그 시간에 퇴근을 일찍 하거나 연차를 쓰지 않으면 방문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상담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초진 비용은 대략 5~10만 원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들었는데 실제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순간 괜히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의 정적은 생각보다 길었다. 옆에 앉은 사람은 무슨 이유로 왔을까, 저 사람은 나보다 더 힘들까 아니면 그냥 가벼운 고민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상담실에서의 헛돌던 대화들

상담사님과 마주 앉았을 때는 준비해간 말들을 다 잊어버렸다. 상담이라는 게 내 마음을 짠 하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이라는데, 그 실타래의 끝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겠더라. 그냥 요즘 잠을 잘 못 자고, 꿈과 현실이 가끔 헷갈린다는 말을 내뱉었다. 조울증증상인가 싶어 인터넷에서 본 자가진단표를 읊어보기도 했는데, 상담사님은 그런 정의보다 지금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내 감정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자꾸만 겉돌았다. 차라리 파킨슨이나 알코올사용장애처럼 명확한 질병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일까 싶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게 더 무서운 법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미묘한 공허함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지만, 드라마에서처럼 극적인 깨달음이나 위로를 얻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상담을 받기 전보다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상담료를 지불하고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탄산수 하나를 샀다. 다음 예약 날짜를 달력에 적어두긴 했지만, 이걸 다음 주에도 내가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울증약을 처방받아야 할지, 아니면 놀이심리상담사 같은 전문가를 찾아가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일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사실이 다시금 나를 짓눌렀다.

불확실한 다음을 기약하며

다음 주 수요일 오후 3시, 과연 내가 상담실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어쩌면 나는 더 완벽한 해답을 찾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벽한 해답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상담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그냥 내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잠시 붙잡아두는 난간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 중이다. 상담소에서 나올 때 받았던 그 어색한 명함 한 장을 가방 안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중에 다시 꺼내 보게 될지, 아니면 가방을 바꾸면서 버리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댓글 4
  • 평일 3시는 정말 접근하기 힘들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 답답함이 느껴지네요.

  • 지하철 창문에 비친 모습이 느껴지네요. 솔직히 상담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과 얻은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 정말 공감해요. 예약 과정 자체의 번거로움 때문에 망설여지는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상담소 위치 때문에 시간적인 제약도 큰 것 같고요.

  • 마음이 엉킨 실타래처럼 느껴지네요. 저도 가끔 겪는 감정이라, 지금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