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줄이려고 병원 문을 두드린 게 벌써 반년 전 일이다

술을 줄이려고 병원 문을 두드린 게 벌써 반년 전 일이다

처음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어색함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위압감이 컸다. 알코올 의존증이나 무슨 클리닉 같은 단어가 붙은 곳을 간다는 게 내 인생에 벌어질 일이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으니까. 그냥 좀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고만 생각했지, 이게 진료의 영역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예약 날짜를 잡고 막상 강남의 어느 정신건강의학과 건물 앞에 섰을 때, 정말로 한 10분은 건물 밖을 서성거렸다.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는 않을까, 입구에서 너무 머뭇거리다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들 때문이었다.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의 그 적막함은 아직도 기억난다. 커피 머신 소리만 웅웅거리고 다들 자기 휴대폰만 보고 있는 그 분위기.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혈압을 재고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했는데, 체크하는 항목마다 내 상태가 생각보다 더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며 겪은 미묘한 변화들

처방받은 약은 그냥 잠을 잘 자게 도와주거나 술 생각이 덜 나게 하는 보조적인 것들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정말 약 때문에 멍한 느낌이었다. 금주약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먹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신체적인 반응들이 생각보다 귀찮았다. 술을 조금만 입에 대도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게 의학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거겠지만 일상에서는 꽤나 난감할 때가 많았다. 친구들과 가벼운 저녁 자리에서 맥주 한 잔도 마음 편히 못 마시는 상황이 되니, 오히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약을 끊을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는 적어도 6개월은 꾸준히 복용하면서 뇌의 보상 회로를 리셋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6개월이라는 숫자가 참 길게만 느껴졌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한 번 갈 때마다 진료비랑 약값을 합치면 대략 5만 원에서 7만 원 정도가 나갔는데, 이게 매주 쌓이니 한 달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들

병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알코올 의존도 테스트를 진행한다. 예전에는 질문지 점수가 꽤 높게 나왔는데, 요즘은 그래도 정상 범주에 가깝게 나온다. 그런데 이게 정말 내 의지로 술을 조절하게 된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약 때문에 물리적으로 마시기가 힘든 건지 가끔 헷갈린다. 상담 선생님은 이게 다 과정이라고 하시지만,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너무 허무하다. 상담 시간은 15분 남짓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지난 일주일을 다 설명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드렸더니, 이건 알코올뿐만 아니라 우울감이나 수면장애가 겹쳐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이나 다른 해외 자료들을 찾아봐도 다 비슷한 이야기다. 원인이 하나가 아니니 결과도 복합적이라는 건데, 그 말이 위로는 되지만 당장 내 머릿속의 안개를 걷어내 주지는 못한다.

폐쇄병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한번은 상담 중에 입원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왔다. 증상이 심각한 분들은 폐쇄병동에서 집중 관리를 받는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병원에 가는 길이 조금 더 무거워졌다. 내가 여기까지 와야 하는 상태는 아닌데, 혹시 나도 나중에 저런 곳에 가야 할 정도로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생긴 거다. 입원해서 외부와 단절된 채로 치료에만 집중하는 게 정말 도움이 될까? 아니면 오히려 다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커질까? 이런 고민을 상담 선생님께 털어놓기엔 너무 겁쟁이처럼 보일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냥 ‘지금은 통원 치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날들이 반복된다.

그냥 지금처럼 흐르듯이

오늘도 병원을 다녀왔다. 처방받은 약은 똑같았고, 다음 진료는 2주 뒤로 잡혔다. 술을 완전히 끊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예전처럼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는 일은 없어졌다는 거다. 이게 내 변화라면 변화일 텐데, 솔직히 이 정도의 변화가 내가 들인 비용과 시간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들은 다들 금주 성공하고 활기차게 산다는데, 나는 여전히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다음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게 전부인 것 같다. 치유는 직선이 아니라는 문구를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내 상태도 직선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일찍 자야겠다. 내일 아침에 조금 더 맑은 정신으로 깨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댓글 2
  • 폐쇄병동 이야기를 들으니, 며칠 동안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졌어요. 지금은 통원 치료로 괜찮지만, 나빠지면… 그 생각에 좀 씁쓸하네요.

  • 처방받은 약들이 잠을 잘 자기 도와주는 정도로는 부족하더라고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뇌 회로를 재설정하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을지 생각하면 좀 막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