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까지 내려가서 심리상담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들

마산까지 내려가서 심리상담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들

갑작스럽게 마산으로 향했던 이유

사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서울 서초심리상담센터를 몇 번 기웃거리다가 예약이 꽉 찼다는 말에 덜컥 겁부터 났다. 뭔가 지금 당장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가 마산에 있는 작은 심리상담소를 예약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서울보다는 좀 더 조용히 내 얘기를 들어줄 곳이 필요했을 뿐인데, 막상 KTX를 타고 마산역에 내리니 내가 왜 여기까지 왔나 싶더라. 상담 비용은 1회당 약 12만 원 정도였는데, 이게 적정한 가격인지 아닌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그냥 어딘가에 돈을 쓰고 나면 내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한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의 상담 경험

상담실은 생각보다 더 허름한 건물 3층에 있었다. 옆에는 별내동피부과 같은 병원들처럼 차가운 느낌의 간판들이 즐비했는데, 상담소 입구는 왠지 모르게 문턱이 높게 느껴졌다. 상담사분은 나긋나긋했지만, 내가 가진 사회불안장애의 증상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지나치게 기록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조금 신경 쓰였다. ‘이분이 지금 내 진심을 듣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 케이스를 분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상담 시간은 딱 50분이었는데, 마지막 5분은 다음 예약 안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신논현역정신과 같은 곳들은 가보지 않았지만, 아마 거기도 시스템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무거운 발걸음

상담을 마치고 마산역 근처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가격은 9,000원이었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먹는 내내 내가 털어놓았던 불안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게 과연 치유의 과정일까, 아니면 그냥 내 약점을 박제하는 일일까. 내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단지 세상에 불만이 많은 건지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상담을 받고 나왔는데도 마음이 가볍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엉킨 실타래를 억지로 풀려다 더 꽉 묶어버린 기분이었다.

기술적 불안과 인간의 감정

요즘 뉴스를 보면 금융사들이 AI 보안 테스트를 한다고 난리다. 전산 장애가 나면 어떻게 대응할지 시나리오를 짜고,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에 기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인 나는 내 마음의 보안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기계는 오류가 나면 코드를 수정하면 그만인데, 나는 왜 어제 느꼈던 그 사소한 불쾌감을 오늘까지 지우지 못해서 끙끙대는 걸까. 상담사에게 묻고 싶었지만 왠지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봐 참았다.

앞으로 남은 막연함

다음 주에도 예약을 잡아야 할지 고민이다. 12만 원이라는 돈이 작다면 작지만, 매주 지출하기에는 내 통장 잔고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자니 상담소에서 들었던 ‘지금은 뿌리가 내리는 시기’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걸린다. 그 말은 위로였을까, 아니면 그냥 상담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멘트였을까. 식물은 남의 계절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비유는 좋았지만, 나는 당장 겨울을 지나고 있는데 언제 봄이 올지 알 수 없는 게 문제다. 당분간은 그냥 이렇게 불안을 안고 지내봐야 할 것 같다.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지금의 내 현실인 것 같다.

댓글 3
  • 계절이 딜레이되는 느낌,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상담 내용이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 AI 보안 테스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마치 제 불안도 기계처럼 꼼꼼히 점검해야 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기술적 불안과 인간의 감정 사이의 괴리는 정말 와닿네요. AI 보안 테스트처럼 시스템적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마음의 불안은 코드로 수정될 수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