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력증이 심해져서 결국 보건소와 주민센터를 기웃거리게 된 과정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회사 일이 힘들어서, 혹은 환절기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영양제도 챙겨 먹고 주말에는 억지로라도 밖에 나가 걸어보았지만 가슴 한구석에 얹힌 묵직한 돌덩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스스로 우울증인지 테스트를 해보는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바닥을 쳤다. 결국 주변에서 정신과나 상담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듣고서야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사설 심리상담센터를 알아보니 1회당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 적힌 안내 페이지를 보고 금방 포기하게 되었다. 매주 그 정도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글을 보았다.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 신청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며 느낀 번거로움
그렇게 알게 된 것이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이었다. 국가에서 심리상담 비용을 바우처 형태로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었는데, 신청 과정이 생각보다 직관적이지 않았다. 우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작성해 준 진단서나 소견서, 혹은 보건소 등에서 받은 의뢰서가 필요했다. 나는 일단 동네의 작은 정신건강의학과에 들러 소견서를 한 장 끊었다. 발급 비용으로 몇만 원이 들었는데, 이것부터가 약간의 진입 장벽처럼 느껴졌다. 소견서를 손에 쥐고 평일에 시간을 내어 거주지 관할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주민센터 사회복지 창구의 직원은 이 사업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지는 않은 눈치였고, 여러 장의 서류를 확인하며 한참 동안 모니터를 두드렸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소득 증빙 관련 서류들을 제출하는 과정은 묘하게 부끄러우면서도 번거로웠다.
사설 심리상담 비용과 정부 지원 바우처의 실제 자부담 수준 비교
신청서를 접수하고 나서 승인이 났다는 문자를 받기까지 거의 2주일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바우처가 생성되면 지정된 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 지원금과 본인 부담 비율이 나뉘었다. 나의 경우에는 중위소득 기준에 걸쳐 있어서 1회당 대략 1만 5천 원 정도의 자부담금이 발생했다. 일반적인 사설 심리상담이 1회당 9만 원에서 12만 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금전적인 부담은 덜했다. 8회기 동안 총 10만 원이 조금 넘는 비용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메리트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갈 수 있는 지정 기관 목록을 받아보니 선택지가 아주 많지는 않았다. 집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위치에 있는 센터가 그나마 후기가 괜찮아 보여서 그곳으로 예약을 잡았다.
지정된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첫 50분 동안 마주한 어색함
상담 첫날, 낡은 상가 건물 3층에 위치한 센터의 문을 열었을 때의 그 특유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로마 향과 오래된 카펫 냄새가 섞인 묘한 공기였다. 대기실에 앉아 문진표 같은 것을 작성하고 있으니 이윽고 내 이름이 불렸다. 상담실은 작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 우울한 감정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겁게 다가왔다. 상담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넸지만, 나는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몇 분 동안 횡설수설했다. 50분이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진을 빼는 일이었다. 시계를 흘끔거리며 남은 시간을 확인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참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첫 세션이 끝나고 나니 시원하기보다는 오히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신과 약물 처방을 병행하면서 머릿속이 멍해지던 날들
상담과 함께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도 꾸준히 복용하기 시작했다. 상담사 역시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감정의 밑바닥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처방받은 약은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지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었고, 약을 줄여달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버텨야 할지 매일 아침 고민했다. 약을 먹으면 우울한 감정의 굴곡은 완만해졌지만, 반대로 즐겁거나 기쁜 감정조차도 무덤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약을 먹는 것과 상담을 받는 것 중 어느 쪽이 진짜 내 상태를 나아지게 만드는지 도무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매일 밤 약을 삼키면서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막막함이 밀려오곤 했다.
8회 상담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명쾌하지 않은 마음 상태
바우처로 지원받은 8회의 상담은 생각보다 금방 끝이 났다. 마지막 회기가 끝나는 날 상담사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며 자부담으로 상담을 연장할 것인지 의사를 타진했다. 솔직히 말하면 8번의 만남을 통해 내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고,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태도가 조금 무뎌졌을 뿐이었다. 한 회당 10만 원에 가까운 원래 가격을 온전히 지불해가며 상담을 계속 이어갈 정도의 확신은 서지 않았다. 결국 연장 신청을 하지 않고 상담실 문을 나섰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완전히 나았다는 기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죽을 것 같지도 않은 그 어중간한 경계선에 여전히 서 있는 것 같다.
소득 증빙 때문에 주민센터에서 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몰라요. 저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불안해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