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조절이 안 되는 건지 성격 자체의 문제인지 헷갈리던 시작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유독 감정 기복이 심하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봤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하게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진 탓이려니 했다. 일시적인 불안장애극복 과정에서 오는 신경과민 같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특정한 성향이 보였다. 본인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갑자기 과도하게 피해자 행세를 한다거나,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 꼬투리를 잡아서 며칠 동안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드는 식이었다. 매번 반복되는 갈등에 나까지 뒷목통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이건 단순한 화다스리는법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성격장애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같은 정신건강 관련 정보들을 닥치는 대로 검색해 봤다. 글들을 읽어볼수록 증상들이 겹치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 같기도 해서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다. 자가진단 테스트 같은 건 아무리 해봐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고, 면담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병원의 긴 대기 시간을 피해 합정역 근처 의원을 찾아갔을 때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보려고 처음에는 규모가 큰 대학병원 정신과나 소아청소년정신과에서 파생된 성인 클리닉 같은 곳들을 알아봤다. 그런데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돌려보니 진료 대기 시간이 기본이 5개월에서 6개월이었다. 당장 집안 분위기가 안 좋은데 반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너무 아득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금 더 접근하기 쉬운 개인 의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합정역 근처에 있는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 예약이 비교적 빨리 된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대학병원처럼 체계적이고 거대한 시스템은 아니겠지만 당장 면담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확실히 대형 병원에 비해 예약 잡기는 수월했지만, 막상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묘한 긴장감은 똑같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괜히 신경 쓰였고, 조용한 음악 소리마저 어색하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비쌌던 검사 비용과 서류 뭉치를 받아 들었을 때의 기분
의사 선생님과 짧은 면담을 마치고 나서 현재 상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종합심리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검사 비용을 안내받았는데, 대략 35만 원에서 45만 원 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꽤 놀랐다. 비급여 항목이라서 그렇다는데 생각보다 가계에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어서 검사를 예약했다. 며칠 뒤 검사 당일이 되었고, 임상심리사분과 마주 앉아 TCI(기질 및 성격검사)와 MMPI(다면적 인성검사)를 포함한 여러 테스트를 진행했다. 검사 시간만 거의 3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나중에는 머리가 멍해지고 내가 뭘 체크하고 있는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질문들이 미묘하게 반복되면서 사람의 심리를 쥐어짜는 듯한 기분이 들어 꽤 피로했다. 3시간 동안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검사를 마친 뒤 받은 영수증을 보며 이 돈을 쓰고도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덜컥 밀려왔다.
성격장애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거부감과 상담실에서의 대화
결과가 나오는 데는 2주일 정도가 걸렸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손에 쥐어진 결과지에는 복잡한 그래프와 백분위 점수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특정 성격 성향이 매우 극단적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대인관계나 일상생활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격장애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화의 맥락상 특정 군의 인격적 편향이 심하다는 뉘앙스였다.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 병명을 딱 떨어지게 진단받는 것보다 성격의 왜곡이라는 진단을 받는 것이 훨씬 더 고치기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화를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받거나 상담을 몇 번 받는다고 해서 수십 년간 형성된 인격이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치료의 방향성도 모호했다. 약물은 일시적인 불안이나 충동성을 완화할 뿐, 근본적인 성격을 치료하는 약은 없다는 설명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의문들
검사를 받고 병원을 다녀온 지 벌써 반 년이 넘었다. 처방받은 약을 몇 달간 복용하긴 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집안에서는 사소한 일로 갈등이 빚어지고, 상대방의 고집스러운 태도나 감정 기복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가끔은 그 비싼 검사 비용을 들여서 병원 문턱을 넘나들었던 행동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나 하는 허탈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병원을 다녀온 덕분에 상대방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아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갈등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정신병원이나 상담 센터를 찾아가면 무언가 뚜렷한 해결책이 나올 줄 알았던 나의 기대가 너무 조급했던 것 같다. 인간의 성격이라는 영역은 의학의 힘을 빌리더라도 쉽게 재단하거나 고쳐 쓸 수 없는 아주 질긴 끈 같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할지 여전히 확실한 답은 내리지 못한 상태다.
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도 가족의 다툼이 계속되던 모습이 마음이 아프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