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멈춰섰던 날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멈춰섰던 날

갑자기 세상이 흔들린다는 기분

그날은 그냥 평범한 화요일 오후였다. 강남역 근처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지하철역 계단을 한 세 칸쯤 올랐을 때였나. 갑자기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단순히 계단을 빨리 올라서 숨이 찬 게 아니었다. 몸 안쪽에서부터 누군가 비상벨을 울리는 것 같은, 그러니까 뇌가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라고 명령을 내리는 그런 기분 말이다.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사람들이 너무 태연하게 지나다니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대단히 잘못됐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집 근처 정신과를 검색하던 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는데도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핸드폰을 켜고 ‘서울 정신과’를 검색했다. 뭐라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군대 가기 전에도 밤마다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는데, 그때는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하고 넘겼었다. 병원까지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다. 강남역에서 들렀던 곳은 진료비가 3만 원 정도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집 근처 병원은 예약 대기만 2주가 넘는다고 해서 그냥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다. 당장 내일이라도 가서 상담받고 싶은데, 예약이 꽉 찼다는 말 한마디에 다시 불안해지는 기분은 정말 묘했다.

강아지 영상이라도 보면 나아질까

불안할 때는 마그네슘이 부족한 거라는 글을 봤다.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약국에서 2만 원쯤 주고 마그네슘이랑 칼슘이 섞인 걸 샀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뭐라도 하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성분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밤마다 유튜브에서 강아지 힐링 영상을 찾아봤다. 연구 결과에서 직장인들 혈압을 낮춰준다고 해서 봤는데, 영상을 보고 있으면 아주 잠깐은 딴생각을 하게 된다. 근데 영상을 끄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그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힐링 영상이 만능은 아니라는 걸 벌써 알아버린 셈이다.

대인기피증인가 아니면 단순 스트레스인가

뉴스를 보면 별의별 소식이 다 있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되었다더라, 혹은 어떤 법이 바뀌었다더라 하는 내용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상황은 저거보다 나은 건가?’하고 비교하게 된다. 예기불안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나서는 더 무서워졌다. ‘내일 또 지하철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이미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사실 사람 만나는 것도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연락해도 그냥 안 읽고 씹는 날이 많아졌다. 이게 정말 대인기피증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유난을 떠는 건지 도저히 판단이 안 선다. 누구한테 말해도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봐 입을 닫게 된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결국 병원 예약은 미뤄두고 그냥 혼자 버티고 있다. 약을 먹는 게 두려운 건지, 아니면 ‘나는 정신과에 가는 사람이야’라는 딱지를 붙이는 게 무서운 건지 사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특정 상황만 되면 다시 예전의 그 멈춰버린 계단 위로 돌아간 기분이다. 완벽하게 치료된다는 보장도 없는 것 같고, 그냥 적당히 이 불안이랑 같이 지내는 법을 익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어제보다는 조금 덜 불안하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또 잘 버텼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내일은 또 다를지, 아니면 똑같을지 지금으로선 정말 알 수가 없다.

댓글 2
  • 밤에 서울 정신과 검색하는 모습이 너무 와닿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한 번이라도 있을까 조마조마하거든요.

  • 계단 오르다가 느껴졌던 그 갑작스러운 불안함, 저도 가끔 비슷한 기분 들 때 있더라구요. 유튜브 강아지 영상 보면서 잠깐 현실을 잊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