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쯤 찾아오는 내 적성에 대한 의문들
다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씩 그런 순간이 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하기가 끔찍하게 싫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은 회의감이 몰려오는 시기 말이다. 나 역시 작년 가을쯤이 딱 그랬다.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어가던 시점이었는데, 매일 반복되는 제안서 작성과 광고주 피드백에 영혼이 탈탈 털리고 있었다. 문득 내 적성이 이게 맞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친구들과 장난식으로 하던 MBTI검사 결과는 늘 ‘기획자’나 ‘활동가’ 유형으로 나왔지만, 정작 실무에서는 엑셀 시트 채우는 일에 지쳐가고 있었으니 괴리가 컸다. 진짜 내 성인직업적성검사 결과를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워크넷 무료 검사와 유료 상담센터 사이에서의 고민
처음에는 나라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워크넷 성인용 직업적성검사를 받아볼까 생각했다. 공짜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왠지 인터넷으로 혼자 문항을 클릭하다 보면 대충 넘길 것 같았다. 조금 더 정밀하게 나를 뜯어보고 싶어서 사설 심리상담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검색해 보니 미술 치료나 NLP를 활용한 심리상담부터 시작해서, 아예 제대로 된 웩슬러지능검사를 포함한 종합 심리검사까지 종류가 너무 다양했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도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 지능검사까지 받는 건 너무 판이 커지는 것 같아서, 직무적성검사와 해석 상담이 묶인 패키지를 선택했다. 비용은 대략 15만 원 선이었는데, 직장인 기준에서 아주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내 진로를 위해서라면 한 번쯤 써볼 만한 액수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합정역 근처 상담센터에서 마주한 예상외로 길었던 검사 시간
상담센터는 합정역 3번 출구 근처의 조용한 골목에 있었다. 예약한 날짜에 맞춰 찾아갔는데, 병원 같으면서도 카페 같은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대기실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대기하다가 상담사분을 만나 간단한 사전 면담을 진행했다. 학업 시절의 흥미나 현재 겪고 있는 직무상 갈등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뒤 본격적인 테스트에 들어갔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숫자 추리, 언어 유추, 공간 지각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 피곤했다.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심리적으로 쫓기기도 했고,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서 머리가 멍해졌다. 결국 모든 문항을 마치는 데 꼬박 100분 정도가 걸렸는데, 다 끝나고 나니 진이 다 빠져서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점수로 수치화되어 나온 내 능력치가 주는 묘한 씁쓸함
결과지는 일주일 뒤에 다시 방문해서 받아볼 수 있었다. 상담사분이 건네준 리포트에는 내 능력치들이 백분위 점수와 그래프로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다. 언어 능력이나 추리력은 비교적 상위권에 있었는데, 평소에 내가 쥐약이라고 생각했던 수리력과 공간 지각은 역시나 평균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신기했던 건 내 사무 지각 속도가 꽤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꼼꼼하고 빠르게 문서를 확인하는 능력이 좋다는 뜻이라는데 정작 나는 엑셀 오타 찾기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 아이러니했다. 내 뇌의 기능적인 특성을 수치로 확인하는 경험은 꽤나 신선했지만, 동시에 내가 잘하는 영역과 내가 좋아하는 일 사이의 간극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묘하게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직무적성검사가 직업을 바로 정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상담을 마치고 합정역으로 걸어오면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직무적성검사를 받으면 “당신은 당장 이직을 하세요”라거나 “이 직업이 찰떡입니다” 같은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상담사분은 내가 꼼꼼한 처리를 잘하지만 동시에 창의적인 자극이 없으면 쉽게 지루해하는 성향이라며, 현재 직무 안에서 업무 방식을 조금 바꿔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결국 15만 원을 쓰고 깨달은 건, 내 적성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 속에서 내가 힘들어하는 요소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였다는 점이다. 돈과 시간을 들여서 정답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그 질문을 다시 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 셈이라 아직도 완벽히 속이 시원하진 않다.
수리 과목에 항상 좌절했는데, 분석 결과도 비슷했다니 흥미로운 발견이네요.
정말 공감되네요. MBTI 검사처럼 단순하게 결과가 나와도, 실제 직무에서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점이 와닿았어요.
수리력 평균 이하라니,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적이 있네요. 제가 원래 수학은 잘하긴 했는데, 문제푸는 걸 너무 싫어해서 그냥 쉽게 넘어가곤 했거든요.
100분이나 걸린 검사 시간 때문에, 제가 생각보다 문제 풀이 방식에 더 취약한 것 같네요. 특히 시간 제한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