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 상담을 고민하게 된 사소한 계기들
거창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을 뿐이다. 아이가 잠든 뒤에 거실에 앉아 각자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육아며 회사 일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제는 서로의 기분을 살피느라 더 조심스러워졌다. 이게 권태기인가 싶기도 하고, 단순히 우리가 너무 지친 건가 싶기도 했다. 주변에 물어보면 다들 비슷하게 산다고 하는데, 막상 우리 상황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이런 답답함이 쌓여서 집 근처 상담센터를 검색해보게 됐다.
집 근처 상담소 상담비는 얼마나 될까
사실 비용 때문에 망설인 것도 크다. 인터넷으로 몇 군데 찾아보니 보통 1회 상담에 10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가 평균이었다. 부부가 함께 가야 하니까 한 번 갈 때마다 20만 원이 훌쩍 넘는 셈이다. 주 1회 방문을 권장한다는데 한 달이면 거의 100만 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이게 적은 돈이 아니다 보니, 이걸 정말 써야 하는 돈인가 싶어서 결제창을 띄워놓고도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지인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사천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같은 곳에서 부모 교육이나 상담 지원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물론 우리는 청소년 자녀를 둔 건 아니지만, 지역마다 건강가정지원센터 같은 곳에서 부부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해서 그런 쪽을 먼저 알아봤다. 돈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는 게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 과정에서 느낀 묘한 망설임
상담을 신청하겠다고 마음먹고 전화를 걸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왠지 전화를 걸어서 “저희 부부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게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손이 떨렸다. 막상 통화를 하니 상담사분은 너무 건조할 정도로 친절했다. ‘상담이 3주 뒤에나 가능하다’는 말을 듣는데,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당장 죽을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3주나 기다려야 한다니, 세상의 고민이라는 게 참 다들 비슷하구나 싶었다. 그 3주 동안 우리는 이상하게 이전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했다. 상담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경고등 역할을 한 셈이다.
상담 현장에서 마주한 낯선 공기
상담센터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특유의 정적을 잊을 수 없다. 대기실에 놓인 낡은 잡지들, 적당히 조절된 실내 온도, 그리고 벽에 붙은 보육교사 안전교육 안내문 같은 것들이 나를 더 긴장하게 했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랑 ‘가서 딱 핵심만 말하고 오자’고 다짐했는데, 막상 상담실 의자에 앉으니 웬걸,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가 먼저 튀어나왔다. 남편은 옆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담사는 적당히 개입하며 우리를 조율했다. 가끔은 너무 뻔한 질문을 던진다 싶어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상담은 해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왜 여기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지 지도를 그려주는 과정 같았다.
다녀온 뒤에도 남은 애매한 기분
상담을 몇 번 받고 나니, 드라마틱하게 사이가 좋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설거지 문제로 싸우고, 육아 방식 때문에 얼굴을 붉힌다. 하지만 예전처럼 서로에게 ‘왜 저럴까’ 하며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은 줄었다. 상담 중에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아,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각자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구나’ 정도를 알게 된 게 전부다. 때로는 디지털북으로 부모 교육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아이를 안고 투표소에 갔던 날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민주적인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게 정말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돈을 쓰고 있으니 변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는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상담이 끝날 때 상담사가 ‘다음 주에 뵐까요?’라고 물으면, 매번 ‘네’라고 대답하긴 하는데 이게 정말 우리 부부에게 정답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조금 더 버텨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