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 머릿속이 멍하고,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분이 널뛰는 느낌이 들어서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았다. 동네에 있는 곳은 왠지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조금 떨어진 곳까지 찾아갔는데, 사실 천호동 근처까지 가는 것도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느꼈던 그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접수대에 앉아 있는 직원분에게 증상을 간략히 적어내고 한참을 기다렸다.
대기실에서 느꼈던 묘한 긴장감
사실 예약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이 꽤 길었다. 대략 40분 정도를 기다린 것 같은데, 대기실에는 나 말고도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보거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괜히 남 일 같지 않았다. 문득 내가 여기 왜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 놓인 잡지들을 뒤적거리다가 결국 그냥 멍하니 벽에 걸린 시계만 쳐다봤다. 신경정신과 입원 경험이 있는 친구가 예전에 해준 말이 떠올랐다. 병원에서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제일 빠르다고 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다가오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약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현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내가 요즘 잠도 잘 안 오고 가끔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니,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시고는 약 처방을 내려주셨다. 그런데 막상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오는데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약이 기억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검색해보니 우울증 치료 방법 중 하나로 약물을 쓰지만, 사람마다 반응이 다 달라서 멍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글을 읽었다. 1주일 치 약 가격은 대략 2만 원대 초반이었는데, 이게 내 상태를 완전히 해결해 줄 거라는 기대보다는 그냥 당장의 증상이라도 조금 잠재워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위산억제제와 함께 처방받은 알약들
신기한 건 신경과 쪽 약과 함께 위산억제제 같은 소화기 계통 약도 같이 처방받았다는 점이다. 아마 약 자체가 위장에 부담을 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알약을 챙겨 먹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떤 날은 약을 먹고 나면 확실히 몸이 좀 가라앉는 것 같은데, 또 어떤 날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부산 쪽 지인이 어지럼증 때문에 신경정신과를 다닌다고 했을 때도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내 일이 되니 사소한 몸의 변화에도 예민하게 굴게 된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내가 정말 나아지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다. 어떤 날은 기분이 괜찮다가도,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우울한 기분이 밀려온다. 의사 선생님은 꾸준히 먹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때로는 이 약들을 평생 먹어야 하는 건가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망상이나 폐소공포증 같은 무거운 증상을 겪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 증상은 가벼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나 자신과 싸우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병원 가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여전히 망설여지고, 예약 시간을 다시 미룰까 하는 고민을 반복한다. 이런 불안함이 언제쯤 사라질지, 혹은 그냥 이렇게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약 봉지를 뜯으며 생각한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잡지 보다가 친구 얘기 생각나네. 병원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친구의 조언이 갑자기 떠올라서 왠지 더 어색해진 느낌이었어.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 신경정신과 경험한 친구의 말이 생각났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빠르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