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들어 일상이 자꾸 삐걱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냥 남들도 다 겪는 번아웃이겠거니, 나이 먹으면서 생기는 당연한 권태겠거니 하며 넘겼는데,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거였다. 흔히들 하는 MBTI 검사는 재미로 몇 번 해봤지만, 그건 그냥 성격의 유형을 몇 가지 틀로 나누는 것일 뿐 내 속의 복잡한 엉킴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결국 서울 시내에 있는 한 심리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에서 ‘종합심리검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그래도 나름 후기가 괜찮고 너무 화려하지 않은 곳을 골랐다. 사실 상담이라는 게 처음이라 예약 날짜를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상담사분과 통화할 때도 어떤 증상 때문에 검사를 받으려 하냐는 질문에 딱히 똑 부러지게 대답을 못 해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냥 전반적으로 다 힘들다는 게 답이었는데, 그게 참 설명하기 어렵더라.
풀배터리 검사 비용과 예약의 무게
예약을 마치고 나서야 가장 먼저 현실적인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흔히 ‘풀배터리’라고 부르는 종합심리검사 비용은 병원마다, 센터마다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내가 알아본 곳은 대략 40만 원에서 60만 원 사이였는데, 적은 돈은 아니어서 한 달 치 생활비를 고민하게 만드는 금액이었다. 최근에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마음투자사업 같은 것도 있다던데, 막상 신청하려니 절차도 복잡해 보이고 내가 그 대상에 적합한지도 헷갈렸다. 결국 그냥 사비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검사 당일,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어찌나 긴장되던지.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도 보이고, 넥타이를 멘 직장인들도 보여서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무언가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겠지 싶었다.
검사 시간과 질문지들의 늪
실제 검사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 단순히 몇 가지 질문지에 체크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MMPI 같은 검사는 문항 수가 워낙 많아서 나중에는 내가 처음에 뭐라고 답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지경이었다. 중간에 ‘아니오’와 ‘예’ 사이에서 갈등하는 문항들이 계속 나오는데,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들을 하나로 규정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검사지 뭉치를 다 넘기고 나니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옆방에서는 아동 풀배터리 검사를 하는지 아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어릴 때 느꼈던 감정들을 무작정 억누르며 자란 건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했다. 검사를 다 마치고 나오니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허기가 몰려오는데 무언가 숙제를 끝낸 느낌과, 이제부터 진짜 결과가 나오면 마주해야 할 내 모습에 대한 불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결과 해석을 앞둔 지금의 마음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결과지를 받으면 내가 그동안 느꼈던 모호한 우울함이나 무기력함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질까? 혹시라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사실 요즘은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ADHD나 우울증 관련 정보가 너무 많아서, 내 증상들을 거기 끼워 맞추다 보면 스스로 진단을 내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병원에서는 영상 검사나 간단한 면담만으로 확진을 내리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아마 나도 상담사와 마주 앉아 결과를 듣게 되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대로 내가 무시하고 살았던 신호들이 사실은 꽤 묵직한 거였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겠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솔직히 지금도 내가 잘한 결정인지 확신은 없다. 돈도 돈이지만,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수치화해서 보여준다는 게 참 낯설다. 검사 결과를 듣고 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상담을 꾸준히 받는다고 해서 당장 내일 아침에 눈을 뜨는 기분이 180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일단 예약을 했고, 검사를 마쳤고, 결과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한테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지내는 게 차라리 편할 때가 있는데, 굳이 들춰내어 이름을 붙이려는 노력이 나를 더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여전히 든다. 다음 주에 병원에 가면 상담사가 어떤 식으로 결과를 설명해 줄지 모르겠다.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줄지, 아니면 사무적으로 결과지만 건네줄지. 그때가 되면 지금의 이 복잡한 마음들이 조금은 정리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될지 잘 모르겠다. 결과지를 받는 게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빨리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기도 한 이 애매한 상태가 앞으로 며칠은 더 계속될 것 같다.
MMPI 검사할 때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거 보니, 저도 뇌 활동량이나 성향 파악을 위해 심리 검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많겠네요.
MMPI 검사할 때, 답변 기억 안나니까 머리 지끈거리는 거랑 어릴 때 감정 억누르고 자란 거 생각 나면서 엉뚱한 생각 하는 거, 진짜 공감되네요.
종합심리검사 예약하면서 불안했던 마음, 저도 비슷했었어요. 유튜브 정보에 너무 의존하면 오히려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와닿네요.
MMPI 검사할 때 처음부터 답 기억이 안 나는 게 정말 그랬어요. 상황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니까 집중하기 너무 힘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