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약 버튼을 누르기까지 걸린 시간
사실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단순히 기분이 좀 안 좋다거나 의욕이 없다는 수준을 넘어,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뉴스에서는 113만 우울증 시대니 번아웃이니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막상 내 상황을 그런 단어로 정의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쉬었음’이라는 딱지가 붙는 게 두려워서였을까. 남들은 다들 치열하게 사는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아 자꾸만 자책하게 됐다. 그러다 정말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체감하고, 동네 근처에 있는 작은 심리상담 센터를 검색했다. 예약 버튼을 누르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전화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비용은 얼마나 들까, 상담사 앞에서 울면 어떡하나 하는 별의별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생각보다 비쌌던 첫 상담 비용
결국 용기를 내어 간 곳은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오피스텔 상가 건물이었다. 간판도 작아서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내가 예약한 곳은 50분 상담에 9만 원 정도를 받았다. 처음에는 이 돈을 내고서라도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병원도 아닌 상담 센터는 실손 보험 처리가 되는 곳도 있고 안 되는 곳도 있어서 미리 알아봐야 했는데, 내가 간 곳은 비급여 항목이라 오롯이 내 지갑에서 나갔다. 한 달에 네 번을 간다고 치면 거의 40만 원 가까이 깨지는 셈이니,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했다. 이미 나는 나 혼자서는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웩슬러 검사를 해보자는 말에 든 생각
상담사님은 차분한 분이었다. 두 번째 세션이었나, 내 상태를 더 정확히 파악해보자며 웩슬러 지능검사를 권했다. 이게 꼭 지능을 재려고 하는 건 아니고, 나의 인지적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서 심리적인 에너지 소진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검사 비용만 20만 원이 추가로 발생했다. 사실 좀 망설여졌다. 지금 당장 일상생활이 힘든데 검사부터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어쩌나 하는 근거 없는 두려움도 있었다.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라니. 그래도 상담사가 내리는 처방이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검사 시간은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고, 검사지를 풀면서 나는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나 하는 현타가 강하게 왔던 것 같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도돌이표
상담실 안에서는 상담사님과 대화하며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상담실 문을 열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다시 묘하게 불안해진다. 지하철의 소음, 사람들의 표정, 내일 출근해서 해야 할 산더미 같은 업무들. 상담사님은 ‘번아웃’이니 ‘자책감을 내려놓으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자책을 안 할 수가 없는 구조다.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번아웃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 마음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상담사님을 통해 확인 사살을 당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게 맞는 과정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가끔은 정말 모르겠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들
이제 다섯 번째 상담을 앞두고 있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무거운 마음은 조금 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요즘은 도서관에 가서 상담 관련 에세이를 몇 권 빌려 읽고 있다. 소피 스콧의 책 같은 걸 읽으며 나만 이런 게 아니라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 다시 현실이다. 상담 센터의 그 쾌적하고 조용한 공기, 상담사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상담이 끝나면 결국 나 스스로 내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상담을 받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더 쉬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예 다른 환경으로 도망쳐야 하는 건지. 답이 없는 물음표만 상담실을 채우고 있다.
10분 거리에 있는 건물이라 실제로 가보니 정말 작은 간판이었네요. 상담 비용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거워 보이셨던 것 같아요.
웩슬러 검사 비용 때문에 고민이 많았었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럴 때 억지로 뭔가 하려다 더 힘들어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소피 스콧의 책 읽으시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할 때, 철학 서적을 찾아보곤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