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날짜를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예약 날짜를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예약 버튼을 누르기까지 걸린 시간

사실 병원 문턱이 높다는 말은 너무 흔하게 들어서 지겨울 정도다. 그런데도 막상 내가 직접 찾아보려니 어디가 좋을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다산신도시 근처로 이사 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동네 병원 하나 제대로 뚫어놓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밤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낮에는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주변에서 다들 신경정신과를 가보라고 했다. 인터넷에 ‘다산 정신과’라고 검색하면 광고성 글들만 잔뜩 쏟아져 나와서 뭘 믿어야 할지 더 막막했다. 어떤 곳은 너무 화려한 인테리어 사진만 올려뒀고, 어떤 곳은 다이어트 수액이나 영양제 홍보를 병원 소개보다 더 크게 걸어뒀다. 나는 그런 걸 찾으려는 게 아니었는데 싶어서 그냥 창을 닫기를 몇 번 반복했다.

대기 시간과 막연한 기다림

결국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무작정 예약을 시도했다. 평일 오후에 전화했는데도 연결이 쉽지 않았다. 한 세 번 정도 신호음만 듣다가 끊었을 때쯤 간신히 연결이 되었는데, 이번 주 예약은 이미 꽉 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신과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은 정말 몰랐다. 주말에 가려니 대기 시간이 최소 한 시간은 넘을 거라고 했다. 동네에 맑은샘정신과 같은 곳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거리상 제일 편한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예약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예약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대기실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들 각자의 표정으로 휴대폰만 보거나 멍하니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앉아 좁은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기분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좁고 아늑했다. 선생님은 무심한 듯 다정한 말투로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미리 적어두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는데, 막상 앉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어제 잠을 몇 시간 잤는지, 요즘 왜 그렇게 기분이 가라앉는지 설명하려고 했지만 말이 자꾸 꼬였다. 선생님은 내 말을 끊지 않고 다 들어주셨다. 그게 참 묘한 기분이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이렇게 끝까지 들어주는 상황 자체가 오랜만이라 그런지, 오히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대단한 치료법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냥 내 상황을 누군가에게 확인받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다.

비싼 약값과 조금은 당혹스러운 현실

진료를 마치고 나와서 수납하는데 약값이 생각보다 꽤 나왔다. 초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처방받은 약의 종류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몇 천 원 더 나왔다.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내고 기다리는데, 약사님이 복용법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다. 하루에 세 번, 식후 30분. 이런 평범한 규칙이 나에게는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알약 개수가 꽤 많았다. 이걸 정말 다 먹어야 하는 건가, 싶어서 한참을 쳐다봤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신과 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글귀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쳤다. 물론 선생님은 그런 말씀 안 하셨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앞으로 계속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오늘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면 내일은 좀 나아질까. 벌써부터 다음 예약 날짜가 걱정이다. 또 그 대기실에 앉아서 30분, 40분씩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기운이 빠진다. 더 저렴하거나 더 친절한 곳이 있을까 싶어 검색창을 다시 켜보지만, 이미 진료를 본 뒤라 그런지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도 귀찮게 느껴진다. 그냥 일단은 여기서 처방해준 약을 며칠 먹어보기로 했다. 특별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황이 금방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찾던 건 완치가 아니라, 그냥 이런 불안함을 털어놓을 작은 공간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댓글 1
  • 비가 와서 그런가, 병원 대기실 분위기가 딱딱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정신과를 찾으려고 할 때, 광고 사진만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