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실 문턱을 넘는 게 왜 이렇게 무거운지
한동안 회사 근처 정신과를 갈까 말까 고민만 수백 번을 했던 것 같다. 대인기피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게 싫어서였다. 용산 근처에 있는 한 정신과를 검색해보고 며칠을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는데, 대기가 너무 길다는 말에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상담 예약 잡는 게 무슨 대학 수강신청도 아니고, 시간을 맞추는 일부터가 나한테는 이미 큰 숙제처럼 느껴졌다.
50분이라는 시간의 밀도
상담사 선생님은 50분 내내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셨다. 보통은 뭔가 조언을 해줄 줄 알았는데,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끄집어내려고 질문을 던지시더라. 비용은 회당 9만 원 정도였는데, 처음에는 이게 과연 이 돈을 주고 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친구를 만나서 커피 마시고 밥 먹으면 금방 쓰는 돈이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었다. 시계 소리가 크게 들리는 정적인 방 안에서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생각보다 에너지가 훨씬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검사 결과지를 받아들고 느낀 묘한 기분
TCI 검사라는 걸 해봤다. 성격이랑 기질을 보는 건데, 결과지를 받아보니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받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그냥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근데 수치로 내 성향을 확인하고 나니까 좀 허무하기도 하고, 반대로는 ‘아,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타고난 기질이 이렇구나’ 싶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근데 막상 결과지를 집에 들고 와서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서랍 속에 처박아뒀다. 굳이 내 단점을 활자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공간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말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거주하는 공간이 심리에 영향을 준다는 구절을 봤다. 천장이 높은 곳에 있으면 생각이 맑아진다나 뭐라나. 생각해보면 내가 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방도 유난히 천장이 높고 조용했는데, 그게 사람을 더 차분하게 만드는 장치였을지도 모르겠다. 집은 좁고 천장은 낮아서 그런지, 집에만 오면 괜히 더 우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상담사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나를 닮은 공간을 꾸미는 게 가능하긴 할까 싶다. 당장 눈앞에 쌓인 빨래더미 치우기도 벅찬데 말이다.
계속되는 의문과 덜 끝난 이야기
상담을 몇 번 더 나가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날은 속이 시원하다가도, 상담이 끝나고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싶어서 이불킥을 하게 된다. 채무 문제나 거창한 사건 때문에 상담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나는 그냥 매일 반복되는 불안 때문에 가는 거라 뭔가 주제가 가벼운 것 같아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상담사 선생님은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다음번 예약 날짜는 또 다가오는데, 그때 가서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지금부터 벌써 머리가 아프다.
저도 TCI 검사 받았었는데, 결과가 나오면 좀 씁쓸하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로 잊어버렸어요.
TCI 검사 결과가 꽤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제 경우에도 비슷한 느낌으로, 결과지를 보지도 않고 던져버리는 행동을 자주 했었거든요.
검사 결과지 보고 답답한 마음 알겠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 한번 해봤는데, 결과 확인하고 바로 정리하려니까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거든요.
결과지를 훑어보면서 기질이 숫자로 매겨진다는 게 좀 신기했네요. 제가 불안함 때문에 상담을 받는다는 게 선생님께 미안할 때도 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