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문득 내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일인데, 그날은 유독 집중이 안 되고 문장 하나를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영양제도 챙겨 먹고 일찍 자보기도 했는데, 사실 근본적인 건 해결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MBTI가 유행할 때 재미로 해봤던 검사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건 십 분이면 끝나는 가벼운 테스트였지만, 이번엔 좀 더 진지하게 내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평소 눈여겨보던 집 근처 심리상담센터를 예약했다.
예약하고 찾아가는 길까지가 제일 어렵다
예약 버튼을 누르기까지가 참 길었다. 원주에 있는 소아청소년정신과나 성인 상담이 가능한 곳들을 몇 군데 검색해 봤는데, 어디가 좋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상담센터라는 곳이 원래 그렇다. 막상 가려고 하면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었다. 내가 간 곳은 1회 상담에 대략 8만 원에서 12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정돈되지 않는 이 상태를 계속 방치하는 비용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상가 건물 3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그냥 갈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상담실 안에서 마주한 빽빽한 질문들
막상 상담실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훨씬 평범한 오피스텔 같은 분위기였다. 상담사 선생님은 인상이 좋으셨지만, 첫 대면의 어색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선생님은 바로 상담을 시작하기보다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다며 에니어그램 검사와 몇 가지 부주의 관련 검사지를 내미셨다. 생각보다 질문이 많았다. 문항마다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까지 체크를 하다 보니, 내가 나에 대해 정말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어떤 문항은 너무 나 같아서 소름이 돋았고, 어떤 문항은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였다. 20분 정도 펜을 굴리다 보니 손가락 끝이 뻐근해졌다.
점수보다 중요한 건 뒷이야기였다
결과지가 나오고 나서는 선생님과 함께 내용을 훑었다. 사실 숫자와 점수로 된 표만 봐서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 점수들을 토대로 내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하셨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시죠?”라고 묻는 대목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인터넷에서 ADHD 병원을 검색하며 혼자 고민할 때는 그저 ‘내가 게을러서 그런가’ 하는 자책뿐이었는데, 상담사의 해석을 들으니 그게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고민이 해결된 건 아니다.
여전히 남은 미묘한 찝찝함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하늘은 맑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조금 무거웠다. 상담 한 번으로 내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면증 치료나 우울증 관련 정보를 찾아볼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이 상담실 문밖을 나설 때도 그대로 따라 나오는 기분이었다. 10만 원 가까운 돈을 썼지만, 내 안에 있는 이 정체 모를 불협화음은 여전히 연주되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재료를 얻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는데, 벌써부터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만족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집에 가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껌을 하나 샀는데, 껌을 씹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뭐라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일단은 잘한 일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여전히 집중이 안 돼서 멍하니 창밖만 보았다.
점수표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상황에 대한 이해가 훨씬 중요하겠죠.
점수 자체는 딱히 의미가 없어 보이네요. 상담사가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어주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